[하루 한 단어] 먼지 – 의미 없어 보이지만 존재하는 하루
오늘 하루는 별일 없이 흘러갔지만, 내 안에는 아주 작은 무언가가 조용히 내려앉았다.
보이지 않지만, 있는 것들
오늘 하루는 유독 허공을 자주 바라봤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나조차도 기록하지 않을 만큼 의미 없는 날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빛줄기 사이로 먼지가 부유하는 걸 보면서,
오늘의 나는 그 먼지 같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엔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앞에서 금방 잊히고 마는.
요란한 사건도, 특별한 감정도 없이
그저 묵묵히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하루를 살아냈다.
뭘 했는지 떠올리려고 해도 손에 잡히는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공허하거나 비어있지 않았다.
그 안에 어떤 무게가 은근히, 하지만 확실히 있었다.
그건 마치 햇살 사이로 보이는 먼지처럼,
평소엔 의식하지 못하지만 빛이 닿을 때 드러나는 그런 존재감이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감정,
스스로도 무심코 넘겨버리는 하루의 결들.
그것들이 사라진 게 아니라 그냥 얇아진 것뿐이라는 걸,
오늘 따라 문득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야.
가볍다고 해서 의미 없는 건 아니고.'
오늘의 나는 그런 하루였다.
한 페이지조차 채우지 못할 것 같은 나날.
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쌓이는 것들의 무게
우리는 종종 무엇인가를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먼지는 다르다.
그건 한순간 눈에 띄지도 않고,
어느 한 번의 흔들림으로 의미를 가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매일매일 쌓인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천천히, 조용히, 자기만의 속도로 공간을 채운다.
그리고 결국엔 존재를 증명한다.
오늘의 감정도 그랬다.
별일이 없었다고 느꼈지만,
하루의 끝자락에 앉아 멍하니 생각에 잠기고 보니
무언가 나도 모르게 쌓이고 있었다.
약간의 피로, 희미한 안도, 작은 후회, 아주 미세한 성취감.
그것들이 한 겹, 또 한 겹, 마음 위에 내려앉는다.
이렇게 쌓인 감정은 언젠가 스스로의 무게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쌓여 나를 지치게도, 위로하게도 만든다.
마치 방 한구석에 쌓인 먼지를 치우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는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공기를 탁하게 만드는 것처럼.
마음을 정리하지 않으면 언젠가 숨이 막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조용히, 그런 감정의 먼지를 바라보았다.
치우려 하지도, 부정하려 하지도 않고,
그냥 ‘그게 있구나’ 하고 알아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속 공기가 조금 맑아지는 것 같았다.
사라지지 않고 머무는 감정
하루를 끝낼 무렵, 방 안에 앉아 가만히 있었더니
정말로 먼지가 눈에 보였다.
이불 위, 책상 틈, 커튼 자락 아래.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띄었다.
아마 마음이 고요하니 시야도 섬세해졌기 때문일 거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도 저 먼지처럼, 언젠가 나를 흔들게 하진 않을까.’
어떤 감정은 너무 작아서 이름조차 붙이기 어렵다.
그저 ‘그런 기분이었어’라고만 말할 수 있는 하루들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런 날들이,
나를 가장 많이 바꾸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거대한 감정은 드라마틱하고 인상 깊지만
진짜 나를 만드는 건 사소한 감정들이다.
그 감정들이 쌓여 내 말투를 바꾸고,
내가 누군가를 대하는 방식을 바꾸고,
나를 돌보는 방식마저 조금씩 달라지게 만든다.
그 변화는 먼지처럼 느리지만, 결코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그런 감정들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정리하려 하지 않고, 덜어내려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있는 감각을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의미 없어 보이는 하루도,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머무는 감정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사라지지 않고 쌓여가는 감정들이 결국 나를 이루고 있다는 걸, 나는 오늘 먼지를 보며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