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단어] 분노 – 작고 큰 것에 화가 난 날
오늘은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날이었다.
작은 화가 쌓일 때
오늘 내가 가장 먼저 화가 났던 순간은, 아주 사소한 장면이었다.
내가 말하는 중에 상대가 휴대폰을 내려다본 것.
한참 집중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내 말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은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가 스르륵 일그러졌다.
“뭐 어때, 바쁠 수도 있지” 하며 넘겼지만, 그 작은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자잘하게 거슬리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주었는데 인사 하나 없이 지나친 사람,
카페에서 너무 시끄럽게 통화하던 손님,
그 모두가 내 마음속 화를 조금씩 더 키웠다.
큰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일들이 쌓이고 쌓이니까,
나도 모르게 말투가 딱딱해지고, 표정이 굳어버렸다.
누군가에게 짜증을 내고 싶은 건 아닌데,
감정이 내 안에서 한계선을 넘어서면서 결국 어딘가로 흘러나오게 되는 거다.
그 감정을 억누르고 덮고 지나가다 보면,
결국엔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터뜨리게 된다.
그게 문제다.
나는 화를 잘 참고 넘기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별일 아니라고 말하며 속으로 삼키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오늘 느꼈다.
내가 참고 있는 줄 알았던 건, 사실 쌓이고 있던 거였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조금 더 뒤로 밀려났다가, 언젠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오늘은 감정을 그냥 인정해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조금 화가 나 있다.
작은 무례함이 내 마음을 흔들었고, 반복되는 피로가 내 인내심을 닳게 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내 감정이 ‘존중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분노는 어떤 면에선, 내가 나를 지키고 싶은 몸짓이라는 생각도 든다.
화를 느꼈다는 건, 그만큼 내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이 어긋났을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화가 났다는 걸 인정하는 일
화를 내는 건 나에게 꽤 어려운 일이다.
나는 항상 상대방의 기분을 먼저 생각했고,
웬만하면 불편한 상황은 피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났을 때조차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게 익숙했다.
하지만 그 괜찮음 뒤에는
말하지 못한 불편함과 참고 넘긴 감정들이 쌓여 있었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유난히 마음이 상했고,
그 기분을 혼자 삭이지 않고 적어보았다.
“사실은 지금, 좀 화가 났어.”
이 짧은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
마음 어딘가에서 조용히 무너져내리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분노라는 감정은 다루기 어렵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것도 나라는 사람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이는 게 필요했다.
사람들은 화를 참는 걸 성숙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참음이 반드시 건강한 건 아니다.
화를 낼 줄 아는 것도 감정의 표현이고,
화를 어떻게 다루는지가 결국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든다.
나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화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화를 참는 것과 감정을 억누르는 것은 다르다.
내가 오늘 깨달은 건,
화가 났다는 걸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화가 났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오히려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더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
오늘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연습을 했다.
억지로 웃지 않고, 겉으로 괜찮은 척하지 않고,
“나 지금, 좀 불편해”라고 말할 수 있는 나.
그런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된 하루였다.
분노의 뒤편에 있던 나
화가 났을 때, 우리는 그 감정에만 집중하게 된다.
누가 나에게 상처를 줬는지, 어떤 상황이 나를 자극했는지.
하지만 오늘은 그 분노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왜 나는 그렇게 화가 났을까.
그 감정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조용히 앉아 그날의 감정을 되짚었다.
상대가 나를 무시했다고 느꼈던 순간,
그 말이 왜 그렇게 날카롭게 느껴졌는지를 생각해봤다.
그 뒤에는 ‘나를 진심으로 대우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내 마음이 가볍게 지나가는 대화 속에서조차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
사실은 인정받고 싶었던 거다.
존재가 가볍게 취급당하지 않기를, 나도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분노의 중심에는 종종 상처받은 마음이 있다.
화를 내는 나를 비난하기 전에,
그 화를 느낀 이유를 먼저 다정하게 살펴야 한다.
화를 참다가 무너지는 게 아니라,
화를 통해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화가 났다는 건, 누군가가 내 경계를 넘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 경계를 다시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과정이
결국 나를 더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오늘 나는, 화를 내지 않았지만
분노를 숨기지도 않았다.
그 감정을 글로 써보았고, 그 안에서 상처받은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건 분명 나를 돌보는 방식 중 하나였다.
감정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분노라는 감정도 결국은 나를 위한 신호였다는 걸,
오늘은 그렇게 이해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