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단어] 충전 – 말 없이 나를 돌본 날
아무 말 없이 하루를 보냈다.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용기
오늘은 일어나서 딱히 뭘 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을 적어둔 메모장은 열어보지도 않았고, 휴대폰 알림도 무시한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러고 싶었다.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는 날에도, 나는 조용히 멈춰 서 있는 쪽을 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 어쩌면 이건 요즘 시대엔 가장 큰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처음부터 편하진 않았다. 괜히 손이 바빠지고 싶었고, 무언가를 해야만 나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쯤은 쉬어도 된다고 머리로는 이해되는데도, 마음은 자꾸만 불안해졌다. 이렇게 시간을 써도 되는 걸까? 지금 이 순간에도 남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무엇도 하지 않으면서, 나 자신에게 조용히 허락을 내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 쉼이라는 선택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곧 나를 돌보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했다. 그렇게 가만히 있던 시간 속에서, 나는 내 안의 소음을 줄이고 있었다.
조용한 시간에 귀 기울이기
충전이란 말은 어딘가 기술적인 느낌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감성적인 행위다. 나를 다시 채우는 시간은 시끄러운 자극이 아니라, 조용한 틈 속에서 일어난다. 오늘 나는 그 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음악을 끄고, TV도 켜지 않고, 휴대폰은 거실에 놓아둔 채 방 안에서 스스로를 마주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순간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조용히 앉아서 차를 마시고, 오래된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냥 그 공간에 나 혼자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됐다. 창밖의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냉장고가 가끔 내는 낮은 진동음, 멀리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 전부 배경음악 같았다. 일상 속에 스며든 작은 리듬들. 그런 소리들이 나를 조용히 감싸고 있었다.
조용한 시간은 나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왜?”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도 묻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주는 느낌. 충전이라는 건 결국 그런 시간이 쌓인 결과물이다.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순간들이, 내 안의 텅 빈 공간을 천천히 채워준다.
다시 나를 살아내기 위한 준비
하루를 아무 말 없이 보내고 나면, 오히려 마음이 조금 단단해진 걸 느낀다. 뭔가 거창한 걸 하지 않았는데도, 내 안에 작은 불빛이 켜진 듯한 느낌. 충전은 바로 그런 상태다.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내 안에서 천천히 생겨나는 생기. 이건 타인이 대신해줄 수 없는 영역이고, 오롯이 나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간이다.
요즘은 ‘잘 쉰다’는 것도 일종의 능력이라는 걸 느낀다. 멈추지 않으면 부서지는 걸 알기에, 이제는 의도적으로 템포를 늦추고 나를 챙기려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를 ‘충전’이라는 단어로 기록하기로 했다. 의미 없이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 내가 있었다. 말 없이 나를 돌본 시간. 조용히 나를 안아준 하루.
내일은 다시 바쁜 하루가 올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마음이 상할지도 모르고, 어깨에 다시 무게가 얹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오늘 같은 하루가 있었다는 걸. 아무도 몰라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이 조용한 충전의 하루는, 분명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할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