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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 – 눌린 하루를 조용히 통과하는 법

by 언즐리 2025. 4. 18.

[하루 한 단어] 무기력 – 눌린 하루를 조용히 통과하는 법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도, 할 일도, 전부 눌린 채 멈춰 있었다.

 

무기력 – 눌린 하루를 조용히 통과하는 법
무기력 – 눌린 하루를 조용히 통과하는 법

 

눌려 있는 몸, 굳어버린 마음

눈을 떴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음도, 할 일도, 전부 눌린 채 멈춰 있었다. 무기력은 종종 예고 없이 찾아온다. 특별히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눈을 뜬 순간부터 몸이 무겁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게 버겁고,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들이 오늘은 어딘가 막막하게 느껴진다. 몸이 눌리는 느낌과 함께, 마음도 깊은 웅덩이에 빠진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떠올려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해보아도 반응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가는 이 느낌, 참 답답하다.

이럴 때면 나는 종종 내가 고장 난 기계처럼 느껴진다. 동작 버튼은 눌렸는데, 작동이 안 되는 상태. 마음도, 몸도 어딘가 어긋나 있는 것 같고, 이유를 설명하려 해도 딱히 없다.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스스로에게 물어도 정확한 답은 없다. 그냥, 그렇다. 바닥에 주저앉은 듯한 하루.

누군가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약하다고, 게으르다고. 하지만 그 말들이 더 큰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를 뿐이다. 때로는 아무 이유 없는 무기력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원인을 찾지 못해도, 설명할 수 없어도, 그저 지금 내가 그렇다는 걸 받아들이는 것. 그게 오늘을 견디는 첫 번째 방법이다.

 

말없이 흘러간 시간에 대하여

무기력한 하루는 유독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아침이었는데 어느새 오후고, 해가 지고 나면 갑자기 밤이 된다. 한 일이 없는데 시간은 훌쩍 간 느낌. 사람들은 그걸 '하루를 날렸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그 표현이 조금 서글프다. 왜냐면 분명히 이 하루에도, 나름대로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애쓰는 모양이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나는 나대로 버티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보여도,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나를 지키고 있었다. 무기력함을 억지로 밀어내기보다, 그냥 그 상태로 숨을 쉬며 시간을 통과하는 것. 그 자체가 오늘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이런 하루를 마주할 때, 나는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기력한 상태는 감정의 일종이고, 감정은 옳고 그름이 없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보내도 괜찮다고, 내일은 좀 나아질 수도 있다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지나고 보면 그런 하루들이 모여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들이, 실은 나를 가장 지켜준 날들이기도 하다.

 

다시, 아주 조금씩 움직이기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데는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가 시작이 된다. 예를 들어 커튼을 걷는 일, 씻고 나오는 일, 따뜻한 물을 마시는 일. 그런 소소한 행동들이 마음속 어둠에 틈을 만든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다시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온다. 그 조그마한 바람이 오늘을 살게 한다.

나는 자주 나에게 묻는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 뭘까? 설거지를 하나 끝내는 것도 좋고, 좋아하는 음악 한 곡을 듣는 것도 괜찮다. 그 어떤 행동이라도 내가 선택해서 움직였다는 감각이 들면, 그게 곧 ‘회복의 출발점’이 된다. 무기력은 단번에 깨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녹아내리는 감정이다.

이제 나는 무기력한 날을 만나도 조금은 덜 당황한다. 그게 나쁜 날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필요한 휴식의 형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가만히 있는 시간도 결국 나를 향한 작은 돌봄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무기력한 하루도 언젠가 지나가고, 그렇게 나는 다시 조금씩 살아난다.